축구
[이천수 관전평] "색깔 없었던 스웨덴전, 멕시코전에선 한국식 축구로 들이받자"
스웨덴과 월드컵 본선 첫 경기는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을 것 같다. 이길 수 있었고, 또 반드시 이겨야 했던 경기를 놓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아쉬운 것은 우리만의 '색깔'이 없었다는 점이다. 한국 축구 월드컵 도전사를 돌아보면 편한 상대를 만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래도 매번 우리만의 '특유의 색'을 담은 축구를 펼치면서 반전의 계기를 만들어 냈다.전반전이 0-0으로 끝나자 '잘 싸웠다'고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45분이 흘러간 것이 아까웠다. 쓴소리가 아니다. 함께 뛰었던 후배들의 월드컵을 보며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이 계속 들었다. 끝까지 치고받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스웨덴은 지난 브라질 대회에 참가하지 못했다. 월드컵 경험만 따지면 한국 선수들보다 부족했다. 경기가 시작되자 스웨덴 선수들은 우왕좌왕했다. 월드컵이란 큰 무대와 수만 관중이 주는 압박감에 눌린 것이다. 그 덕분에 경기 시작 이후 15분 동안 손흥민과 황희찬을 앞세운 우리 공격진의 빠른 공격과 압박이 상대를 압도했다. 스웨덴 선수들의 면면을 봐도 큰 키를 앞세운 세트플레이를 제외하고는 밀릴 것이 없었다. 경험·빌드업·기술적인 부분은 비슷했고, 스피드와 1 대 1 능력에선 오히려 한국이 더 강했다. 느리고 부정확했던 스웨덴의 공을 전방에서 뺏어서 곧바로 역습을 펼쳤어야 했다. 전반 15분 이후부터 한국의 수비 라인은 내려앉았다. 신체 조건이 좋은 스웨덴을 의식한 나머지 최전방 원톱 공격수로 나선 김신욱도 수비 시에 하프라인 아래까지 내려왔다. 멕시코처럼 빠른 팀도 아닌데 뒷공간을 잠근 것이다. 역습 시에 손흥민과 황희찬의 해결 능력은 중앙선 위 지점, 상대 진영에서부터 시작돼야 공격력이 극대화된다. 탄력이 떨어지지 않은 채 상대 페널티 지역까지 돌파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비 라인이 뒤로 밀리면서 손흥민이 하프라인 한참 뒤에서부터 공격을 시작한 탓에 상대 진영에 도착했을 땐 힘과 속도가 떨어지는 모습이었다. 공간이 많아진 스웨덴은 한국 진영까지 손쉽게 전진했다. 다급해진 우리 선수들의 태클과 반칙으로 이어졌다. 결국 한국이 그토록 경계했던 페널티 지역 주변에서 프리킥을 헌납한 꼴이다. 김신욱 카드가 애매했다. 수비하다가 역습하는 축구에선 빠른 손흥민-황희찬-이승우처럼, 빠른 공격수들이 유리하다. 굳이 김신욱 카드를 낸 의도는 공수 상황에서 큰 키를 이용하겠다는 의도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헤딩으로 리바운드를 따낸 장면은 경기를 통틀어 몇 차례 되지 않았다. 앞서(4월 9일 자 일간스포츠 칼럼) 지적했듯 김신욱이 출전한 것이 손흥민의 강점도 죽였다. 김신욱이 뛰면 동료들이 그의 머리를 향해 공을 띄우는 경우가 많다. 스웨덴전에서도 그랬다. 손흥민은 원톱 공격수가 떨군 공을 잡아 내는 유형의 공격수가 아니다. 공을 갖고 직접 돌파한 뒤에 슈팅하는 '해결사' 유형이다. 안 그래도 김신욱이 따내는 헤딩 수가 적은데, 손흥민과 플레이 스타일까지 맞지 않으니 경기가 잘 풀릴 수 없었다. 기왕 김신욱을 기용했다면 함께 전북에서 뛰는 '단짝'이자 측면 수비수인 이용이 지난 온두라스전처럼 적극적으로 공격에 가담했어야 했는데 거꾸로 수비에 치중했다. 스웨덴 같은 팀은 빠른 공격수들을 이용해 괴롭혔어야 했다. 김신욱은 후반 막판 20분쯤에 투입했어도 늦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 더 어려운 상대가 기다린다. 내가 경험한 멕시코는 직접 뛰어 보면 더 강하게 느껴지는 팀이다. 스타플레이어 수는 유럽의 강팀들보다 적을지 모른다. 하지만 실제로 축구를 해 보면 웬만한 강팀보다 빠르고 강력한 공격 축구를 구사한다. 세계 랭킹 1위 독일을 이긴 것도 우연이 아니라는 뜻이다. 멕시코가 들고나올 전술도 잘 분석해야 한다. 멕시코는 독일을 상대로 우리와 비슷한 강력한 압박을 앞세운 '선수비 후 역습' 전술을 구사했다. 하지만 이 전술은 어디까지나 상대가 세계 최강 독일이었을 때 유효하다. 한국을 맞아선 더 강하게 몰아칠 수 있다. 이제 우리도 물러서는 축구를 해선 안 된다. 이번 대회는 아이슬란드의 '지키는 축구'가 화제다. 그들은 전쟁 같은 유럽예선도 같은 방식으로 통과했다. 늘 해 오던 축구를 월드컵에서도 하는 것이다. 반면 한국은 상황이 다르다. 평소에 한국 축구는 지키는 축구를 구사하지 않는다. 한국은 아시아예선에서 늘 강팀이었다. 한국에는 예상보다 좋은 능력을 가진 선수들이 많다. 앞에서 경기를 풀어야 한다. 또 다행인 것은 스웨덴전 후반 이승우 투입 이후 한국이 그동안 평가전에서 연습했던 손-황-이의 케미스트리를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1승을 먼저 한 팀과 1패를 떠안은 팀이 느끼는 압박감은 다르다. 하지만 한 명이 붙어서 안 되면 두 명이 붙어서 뺏으면 된다. 상대보다 많이 뛰어야 한다. 한국 축구는 체력에서 절대 밀리지 않는다. 그것이 지금까지 한국이 해 온 축구다. 후배들이 이 점을 잊지 않길 바란다.늘 불리한 위치였지만, 그것을 이겨 냈을 때 국민들은 환호했다. 공은 둥글고 어디로 튈지도 모른다. 신명 나게 뛰어 주길 바란다. 정리=피주영 기자
2018.06.20 06:00